1.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우리(이스라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을 요구하심(레11:45, 마5:48)
-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 ’거룩한과 온전함‘ 추구
- 허나, 구별되는 자세한 내용의 핵심 ’새생명‘이다.
- 꼭 나쁜짓을 하거나 부도덕한 일과 같은 윤리, 도적적인 관점이 아니라, 생명이 없어 썩어가는, ’죽었던‘ 우리의 옛모습을 기억해야 한다.(엡2:1-3)
-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결과 죽게 된 것이 아니라, 불순종으로 인해 이미 죽은 상태
- 이방인과 같이 행하지 말라, 생명에서 떠나 있노라(엡 4:17-19)
- 믿는 자, ‘새사람’으로 ‘새생명’을 가진다.(엡 4:23-24)
2. 구원 얻는 것을 ‘생명’을 얻었다는 말로 표현하곤 합니다. 이 ‘생명’이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속성이 강조되어 있습니까?
- 새생명(구원)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되고, 예수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되었다.
-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케 됨으로 우리를 살리신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하심(벧후1:4)
- 거룩해서 부른 것이 아닌, 거룩함을 목표로, 또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율법’을 주심
- 결국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거룩해지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
- 그렇기에 새 생명이 있다는 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자라남’이 교회를 염두할 때 중요.
3. 신자를 자라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 예수를 믿었다고 바로 변하지 않는다. 잊지말아야 한다. 신앙은 자라는 것이다.
- 여전히 육신에 속한 신자가 있다. 사도바울 ‘어린아이, 젖먹이’(고전3:1-3)
- 그렇기에 ‘교회’를 ‘자라나는 과정’ 가운데 ‘허락’하셨다.
- 거룩함과 온전함에 이르는 일을 믿자마자 x, ‘씨름하듯이 자라나야 하는 과정‘필요
- 교회에는 이러한 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성경은 자라나라고 요구한다.
- 그리스도안에 함께 지어져 간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간다.(엡2:20-22)
- 구원하신 이후에 교회로 부르신 이유 ‘온전함과 거룩함’은 관계 속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성품에 관한 것이기 때문
- 지어져가는 ‘각고의 노력(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려는)’이 필요하다.
[적용]
“고슴도치와 밤송이만 모여 있는 교회인데, 그 안에서 자라나며 성숙해진 경험이 있
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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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5:48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죄없는 삶을 요구하신 것일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성도의 온전함이란 하나님의 의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죄를 짓지는 않는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무지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처럼 완전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도들의 온전함이란 자발적인 불순종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또한 의지적인 실패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잘못도 죄에 포함될 수 있다. 성경은“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온전함이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온전/완전(Perfection)
영적인 완전함에 닿으려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온전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타밈’(tamim)은 희생 동물이 흠이 없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말하기도 하고(출 12:5),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곧 의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신 18:13; 삼하 22:26). 이에 연결되는 헬라어는 ‘성숙한 또는 다 성장한’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전 14:20; 엡 4:13; 히 5:14; 6:1). 구약성경에서 온전함의 본보기는 노아(창 6:9), 욥(욥 1:1)으로 대변된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백성은 영원히 온전하게 된다(히 10:14).
온전함의 기초: 온전함의 기초는 하나님 자신에게 둔다(신 32:4). 하나님은 불완전으로부터 자유하신 분이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온전함을 요구하신다(마 5:48).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성숙해가며 예수님의 온전함을 함께 공유하며 새롭게 태어나므로 온전하게 되었다(골 3:10). 여기에 긴장감은 항상 존재한다. 지구상에 죄는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더욱 온전하게 될 것을 필요로 한다(빌 3:16).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온전함은 죄없음과 동등하지는 않다(요일 3:6-9).
결국 신약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온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비록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셨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온전하게 만드셨다(히 2:10).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온전을 이루어 가신다(히 7:25; 4:14-16).
웨슬레 파의 전통에서‘죄’는 널리 알려진 하나님의 뜻을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정의되며, 온전하라는 요청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하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무지나 본성의 한계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믿는 자가 의도적으로 불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는‘온전하다’(perfect)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전통에서는, 죄란 의도적인 불이행뿐 아니라, 비의도적인 불이행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전통들에서는 죄가 전혀 없는‘온전’(perfection)의 가능성이 부인되는데 그것은 신약에서 말씀하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온전성’(perfection)에 대한 각자의 개념은 그가 어떤 신학적 전통을 견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온전, 성숙의 잠재성: 예수님 및 신약의 기록자들이 사용한 ‘온전한’(perfect)이라는 헬라어는 ‘텔레이오스’(teleios)이다. 사람들에게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성취한, 성숙한, 임무를 위해 충분하게 소양을 갖춘’(골 1:28 참고)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은 표현되어야 할 잠재성, 또는 달성되어야 할 성숙의 뜻으로‘온전한’과 ‘온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몇 가지 예외의 경우가 있다. 몇몇 종말론적인 내용을 다루는 본문에서는‘온전’을 절대적인 의미로 사용한다(고전 13:10). 요한은‘온전한 사랑’(perfect love)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믿는 자를 완전히 채워서 두려움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사랑이다(요일 4:18).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되었은즉’(made perfect- 히 5:9)이라고 말씀한다. 그 의미는 예수님께서 순종하셨기 때문에 구원자의 역할을 하실 자격이 그분께 충분히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희생 제사로 상징된 구원의 사역을 완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했다”(made nothing perfect- 히 7: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단번에 희생 제물로 드려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perfect forever-히 7:28; 10:1, 14) 하심으로써 이 임무를 완수하셨다.
바울이 “우리가 … 이것을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Our prayer is for your perfection)고 말하면서, 그의 글을 읽는 자들에게 ‘온전케 되기 위하여’(aim for perfection-고후 13:9, 11)라고 권고했을 때, 그 초점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소망에 있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가 깊어질 때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의 문이 열리는데, 그 미래에 우리는 구세주를 더 닮아가고 우리 각 사람이 갈망하는 선과 사랑의 모습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